하지훈 작가의 작업은 안정적이고 단단한 수평의 지반을 기초로 수직으로 융기한 섬이나 산이 옹골지게 구조를 이루었다는 인상을 준다. 물감은 붓질의 기교에 의해 화면에 두텁게 올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옅고 투명하게 올려지기도 한다. 많은 관람자와 비평가들은 하지훈 작가의 작품이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서 벌이는 시각적 긴장을 즐겁게 바라본다. 그러나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시적인 게임을 바라보지 못한다.
우선 하지훈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대구에서 수학했다. 당연히 대구 화단의 영향을 받았다. 대구 화단의 성좌(constellation)는 순수주의라는 중력에 의해서 그 좌표가 배치되고 결정된다. 순수주의는 매체가 지닌 가능과 한계를 절실하게 탐험한 작가에게 영예의 좌표를 허락하지만, 반대로 순수주의를 훼손시키는 움직임에 대해서만큼은 포폄의 논의에서조차 빗겨나도록 단호하게 배제했다. 순수주의의 기치(旗幟)를 옹호하는 성좌에 대하여 계보학의 선상에서 존중하는 매력을 발휘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인생경험과 다양한 실존을 넉넉하게 수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애정의 오류이다. 하지훈 작가는 이 애정의 오류가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동시대의 문제적인 회화가가 되길 바랬다. 새로운 형식,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싶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독일 뮌스터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트렌드와 전략을 중시하는 영미권의 교육 스타일보다 가는 길의 장애물들을 돌파하면서 사유의 깊이를 더해가는 독일어권의 예술을 더욱 사랑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스승 미카엘 반 오펜(Michael Van Ofen)을 만나게 된다. 스승 마카엘 반 오펜은 세계 미술의 전설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총애를 받으며 성장한 작가였다. 스승 미카엘은 제자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하지훈 작가를 독려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지훈 작가에게 독일의 전통이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작가가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개인주의의 자유와 공동체 정신 사이의 갈등과 화해의 변증적 역사였다.
18세기 말부터 유럽은 이미 전통이 지닌 강대하고도 위력적인 위용과 위계질서가 와해되고 있었다. 대신 자율, 평등, 정의, 자유와 같은 신생의 가치들이 규범적이고 종교적인 삶을 대체해갔다. 1840년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개인의 욕망과 관심을 공동체적 가치보다 중시하는 경향을 가리켜 ‘개인주의(individualism)’라고 이름 지었다. 그것은 거대한 공동체의 가치로부터 가족, 친구, 서클 등 작은 사회로 가치가 이행하는 경향을 뜻한다. 공동체는 거대 서사(grand narrative)를 기반으로 존재했다. 거대 서사란 인간의 역사가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는 세계관이다. 이를 목적론(teleology)이라 부른다. 그러나 작은 사회를 지향하는 움직임에 시동이 걸린 이상 이 움직임은 거대한 목적론과 서로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거대한 목적론이 누르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날듯이 가벼웠지만, 동시에 부작용도 생겼다. 그것은 허전함이고 죄책감이며 방향성 없는 상실감이었다. 그리고 콘템프투스 문디(contemptus mundi), 즉 세상에 대한 경멸마저 생겼다.
사람들은 세 가지 의식의 차원이 있는데, 주지와 같이, 상상계(imaginary) · 상징계(symbolic) · 실재계(real)가 그것이다. 상징계는 어렸을 때 체화된 의식으로 세계에 대한 상(象)을 결정한다. 이것은 평생 고쳐지지 않는다. 합리적 이성으로도 고칠 수 없는 견고한 상이자 총체적 감수성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 영웅 서사가 상징계에 자리 잡으면 그 사람의 세계관은 영웅적 서사가 되며 결정적의 삶의 계기에서 영웅의 마스크를 쓰게 된다. 기독교의 자애로운 사랑을 실천하는 성인에 대한 상이 상징계에 깃들게 되면 일평생 사랑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매사 성인의 마스크를 쓰고 세상을 접하며 실천한다. 몬타나 주의 크로우족 인디언(the Crow Tribe)은 어릴 적 형성된 상에 의해서 일평생 용맹한 전사로 살게 된다. 그러나 이렇듯 역사적 인간, 거대 서사의 인간, 공동체의 인간에서 개인주의적 인간, 모던의 인간으로 이행될 때, 사람은 사람을 계산된 사회 체계의 몰개성한 군체(群體) 정도로 인식하며 사람은 사람을, 그리고 사람들을 사물쯤으로 바라보고 대상화시킨다. 다만 작은 서클 속에서 공통의 관심과 취향을 누리며 그것이 모든 것이라 여기며 본연을 잊게 된다. 거대한 대아(大我, I)에서 작은 소아(小我, i)로 전락하며 근본을 상실한다. 사람을 목적으로 보지 않고 수단쯤으로 여긴다. 비루하지만 진중했던 삶에서 풍요롭지만 경첩(輕捷)한 삶으로 존재를 패퇴시킨다. 따라서 모더니즘과 개인주의가 지닌 커다란 두 가지 문제점은 자기 소외와 자기 상실이다. 이를 철학자 하이데거는 ‘고향상실(homelessness)’이라 하기도 하고 근절(根絶), 즉 ‘뿌리 뽑힘(uprootedness)’이라 부르기도 했다.
미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징계에 목적론의 거대 서사가 깃들었을 때 대형 작가와 위대한 작품이 나왔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성행하고 나서부터 미술 역시 목적을 잃고 개념과 세계는 파편화되었다. 개인주의로 가는 세계의 액셀러레이터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가속화된다. 그래서 위대한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사람들은 더 이상 고귀한 목적의 의미를 수용하지 못할뿐더러 무언가를 위해 죽겠다는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Charles Taylor, The Ethics of Authenticity. 1991. Cambridge, MA: Harvard Press, 4. “People no longer have a sense of a higher purpose, of something worth dying for”). 그런데 독일 미술계에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가 있었다. 요셉 보이스는 전통과 개인주의 사이에 놓인 심연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고 가르쳤다. 스스로에게 물어서 절실하고 진실된 체험이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독려했다. 자신에게 단 한 가지 변할 수 없는 진실은 전쟁 중 겪게 된 비행기 추락과 타타르족 무속인의 제식으로 자신이 깨어났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래서 보이스는 평생 버터를 만졌다. 요셉 보이스의 제자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나치 경력이 있는 집안사람에 의해 다른 집안사람들이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의 늪으로 빠져들었으며 이 늪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픈 기억들을, 아픔이 빗겨있는 소중한 기억들을, 사진 속에 맺혀있는 어렴풋한 느낌들을, 화면에 소환시켜 되살리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신문기사를 보며 사회의 안녕을 살폈다. 그리고 하지훈의 스승 마카엘 반 오펜은 개인주의 시대의 사진과 전통 시대의 장르화 사이의 접점을, 추상과 재현의 접점을 찾는 여정에 자기의 대서사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따라서 사진과 미술사를 평생 화두로 삼았다. 개인주의와 전통이라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을 매체로 극복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하지훈 역시 스승과 스승의 스승, 그 스승의 스승이 떠났던 고독한 길을 함께 따라 가기로 결심한다. 트렌디한 작품을 생산하다 명멸하는 수많은 작가들의 길을 걷지 않고, 첨예화되어 가는 개인주의로부터 회화의 힘을 복권시키는 데 자신의 명운을 걸기로 한다. 하지훈 작가는 어려서부터 빈번하게 이주한 경험이 있다. 부산에서 포항, 포항에서 대구, 대구에서 뮌스터, 뮌스터에서 서울로 이동했다. 이동할 때마다 기억으로부터 디아스포라가 물밀듯이 다가왔으며 빼앗긴 디아스포라의 영토를 마음 속에 재배치해야만 했다. 풍경은 하지훈에게 필연적 실존이었다.
하지훈 작가는 풍경을 그린다. 그런데 재현이 아니다. 풍경을 구조화시키며 묵직하고 육중한 덩어리로 형상화시킨다. 스승 미카엘 반 오펜이 추상과 구상의 경계(Grenze zwischen Figuration und Abstraktion)에서 개인주의와 전통적 서사의 해후를 구조화시킨다면, 하지훈은 ‘본다’라는 시각적 행위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서구의 풍경화는 고정 시점이다. 절대적이어서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있는, 그리고 기하학적으로 약속된 가상의 선을 그리고, 그 안에 보이는 대상을 집어넣는다. 그러나 그러한 시점을 우리는 누릴 수가 없다. 시시각각 움직이는 우리의 동작과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인해서 우리는 고정된 기하학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그렇다면 사진은 어떠한가? 사진은 0과 1이라는 이전법과 프로그래머가 만든 카메라의 시선이어서 자연스러운 우리의 시선이 아니다. 우리가 프랑스 코르시카 섬에 여행하더라도, 아니면 생 빅투아르 산에 놀러 가서 그것을 한껏 바라보더라도, 일단 집에 와서 침대에 누우면 섬과 산이 있는 그대로 사진처럼 보이지 않고 추상화된다. 우리 뇌리에 각인되는 코르시카 섬과 생 빅투아르 산은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일 수 없다. 그것은 총체적 감수성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오온(五蘊), 즉 모든 감수성의 기제가 가담하여 기억을 재생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으로 추상적이다.
하지훈 작가는 우리의 시각을 해체한다. 우리의 시각이 지니는 문제점을 근본부터 사유하여 재조정하고 재배치한다. 우리 눈이 보았던 산의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모습과 시점들은 걸음걸이와 이동과 손놀림과 제스처, 그리고 호흡과 함께 작용한다. 산에서 나는 소리, 공기의 청명한 맛, 바람의 손길을 동시에 느끼면서 산을 본다. 여기서 감각은 폭발하며 정서는 상승 무드를 탄다. 이러한 총체적 느낌을 사진과 고정시점의 풍경화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 산수화가 풍경을 만날 때 느끼는 총체적 느낌이 서구가 개발한 고정시점의 풍경화보다 더욱 진실된 것이다. 하지훈의 풍경 구조는 눈으로 표현한 풍경화가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오온, 즉 색온(色蘊: 육체, 물질) · 수온(受蘊: 지각, 느낌) · 상온(想蘊: 표상, 생각) · 행온(行蘊: 욕구, 의지) · 식온(識蘊: 마음, 의식)을 모두 종합시킨 풍경화이다.
우리의 마음에 영원히 자리하는 대시인 동파 소식(東坡 蘇軾)은 제서림벽(題西林壁)이라는 시에서 “가로로 보면 고개, 세로로 보면 봉우리.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에 따라 모습이 제각각이구나. 여산의 진면목을 내 알지 못하는 까닭은 이 몸이 바로 산 속에 있기 때문이구나.”라고 노래했다(橫看成嶺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우리는 본질적으로 풍경을 묘사할 수 없다. 언어로도 그렇고 예술로도 그렇다. 진면목을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바로 그것, 이러한 메타적 인식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다. 그리고 하지훈 작가는 갈수록 소외와 세상혐오가 짙어지는 세태에 가장 현대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고전의 감각을 원융회통(圓融會通)시켜 새로운 성찰의 길을 열어가는 작가이다. 내가 이 산 속에 있으면 그 산의 진면목을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산이 내게 주었던 총체적 느낌을 구조화시키고 마음 속에 심화시킬 수는 있다. 하지훈이 가고 있는 길은 아름답고 숭고하지만 절대로 무겁지만은 않다. 시원하고 상쾌한 길이다. 나는 여기서 우리나라 회화의 미래를 본다. 그림은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온몸으로 사유하고 육화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작가의 그림을 통해 배우게 된다. 하지훈의 풍경구조는 서구의 전통으로 감화되어 발아되었지만 우리 전통의 인생론과 우주관과도 절묘하게 짝을 이루며 무게와 깊이를 더해간다.
이진명, 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