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훈의 풍경은 어디선가 본 듯한 실제풍경이 전혀 아니다. 장엄하거나 힘찬 자연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불안정하거나 신비로운 느낌이 들고, 화면 속의 풍경은 여러 단면체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어딘가에서 존재하고 있는 자연, 혹은 풍광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그가 보았거나 기억하고 있는 풍경, 혹은 여행사진 이미지를 추출하여 재편집한 결과이다. 그 중에서도 특이한 점은 그가 작업의 초기단계에서부터 관심을 가지고 모아왔던 여행사진 혹은 유명자연관광지 사진이다. 이러한 사진 속의 이미지는 자연, 도시, 건축물이 나름의 형식에 의해 돋보이도록 하여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는 듯 여겨진다. 또한 이러한 이미지들은 시대마다 달라지는 독특한 시각적 매커니즘과 그것을 요구하는 대중의 수요를 반영하는 시각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어떠한 대상의 만들어진 이미지는 그것이 지닌 원래의 의미와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것은 실제의 풍경이 지닌 본질, 아름다움의 정도 혹은 수준과는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을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 작가는 이미 잘 가공된 이미지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함으로써 자신만의 풍경을 만들어나가고자 한다. 이러한 편집된 화면은 작가의 주관적인 관점에 의한 것이므로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작가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실제의 재현 혹은 이미지의 완벽한 구성을 깨트려버림으로써 감상자 개개인이 자신의 경험, 감정, 연상작용에 따라 각기 달리 반응할 수 있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면 속의 풍경은 여러 분절된 부분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음과 동시에 서로다른 시선과 방향성이 자연스럽게 포함된다. 또한 구체적인 공간감각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부분개체의 조합은 평면적이기보다는 입체주의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풍경 이미지를 재조합하는 작업 배경에는 작가 자신의 경험도 작용했을 것이다. 작가가 자라온 동안 30번 이상 이사했던 경험은 그 자신이 지니고 있는 과거의 공간과 경험에 대하여 불확실한 기억만 남던가 혹은 아예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은 잊혀지게 되었다. 어느 순간 실체는 사라져 버리고 파편화된 기억은 단편적인 이미지만 제공해줄 뿐이었다.

이미지의 편집에 있어서 작가는 대상이 지닌 원근법, 구도, 원래 공간의 특성을 무시하는 태도 뿐만 아니라 원래 색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명암을 조절하는 특성도 보여주고 있다. 명암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나 작가의 주관적인 색채를 썼다는 점은 형태의 콜라쥬, 붓터치와 함께 작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마티에르가 두껍지 않지만 그는 물감이 캔버스에 묻히고 안착되는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붓 이외에 손으로도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의 작업은 지금까지 크게 드로잉, 회화, 그리고 조각작품으로 진행되어왔다. 드로잉은 회화작품을 제작하기 전 혹은 회화작품을 제작하고 난 뒤 잔상을 표현하고 있다. 한편으로 보면 대형회화작품을 제작하기 앞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치는 워밍업의 개념으로 간주된다. 붓필치가 더욱 압축적이면서 속도감을 드러내고 그로인한 구체적인 형태감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다는 점에서 회화의 구상성과 다른 추상성을 동시에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유분방하며 실험적인 작업이라는 관점에서 작가에게 있어 드로잉은 준비된 일탈이기도 하다.

회화작품의 경우 풍경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의 만들어진 풍경은 잘 짜여진 체계를 강조하듯 구축적인 경향이 강하여 화면의 중심에 자리잡은 무대장치 혹은 하나의 조각작품을 흩뜨려 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0년부터 풍경전체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됨으로써 풍경이미지는 단일한, 중심부적인 형태감에서 점차 화면 전체로 개체들을 확장시키고 있다. 배경의 시공간이 모호하더라도 점차 배경을 표현함으로써 모호한 자연상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초기 구축적인 경향이 강했던 풍경작업에서 나왔던 것이 바로 조각작품이다. 캔버스를 절단하고 붙여나감으로써 여러 단면을 지닌 입체적인 풍경작업은 회화작품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조합의 끊임없는 확장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조각작업은 개체의 조합이 어느 순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되고 확장되고 있는 과정 중에 있음을 상징하고 있기에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류지연_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