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훈의 7번째 개인전이 열렸다. 이번전시 《Acting Isle》에는 〈기념비적인 산(Monumental Mountain)〉과 〈고전적 풍경(Classical Landscape)〉, 〈원석섬(Gemstone Isle)〉시리즈 등 20여점이 출품됐다. 작가는 2016년 대구미술관의 《회화를 위한 소조》전에서 작업방식과 태도에 변화를 보였다. 자신이 경험했던 주변과 자연물을 평면으로 옮겨온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기록물에 의존하기 보다는 작가 자신에게 남아있는 감상과 감정에 집중한 조형을 보였다. 작가는 2007년 풍경시리즈를 시작한 이후 《길들어진 풍경》(2009), 《요새》(2012), 《The big Isle》(2014), 《풍경》(2015) 등의 전시로 풍경에 대한 해석의 층위를 두텁게 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작가의 풍경에 대한 종합적인 경험을 환유하여 시각적인 효과로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위한 회화적인 방법론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단순히 보고 경험해온 것의 모사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해석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적·표현적 집념을 이끌어오며 꾸준히 변화를 추구해 왔다. 하지훈은 조반니 벨리니의 〈성스러운 알레고리(Holy allegory)〉(1490-1500)와 아르놀트 뵈클린의 〈망자의 섬(Island of the Dead)〉(1886)에서 강한 인상을 받아 풍경작업을 시작했다.(2016년 개인전 도록 참고) 조반니 빌레니가 화면 내에서 색채의 단계적인 변화 층을 드러내 주제부와 원근을 강조한다면, 아르놀트 뵈클린은 이를 위해 조형의 배치와 선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작가는 이러한 특징들을 더욱 폭넓게 소화하면서도 자신만의 표현을 더하는 현재의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풍경을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작가 자신의 감식안에 있어 완급을 조절해가며 표현하고자 하는 것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근작에서 먼저 보이는 것을 말한다면 단연 화면의 중앙에 위치한 색면의 구조물이다. 〈기념비적인 산〉시리즈의 경우 구조물을 감싸는 배경과 구조물이 디디고 있는 하부의 면은 비교적 담담하게 두지만, 중앙에서 물감을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작가의 자취를 적극적으로 남기는 것으로 물감의 강한 동세를 생성한다. 시각에 적극적인 효과로 말미암아 화면의 바닥과 배경, 중앙의 구조물 각각이 원근을 형성하지는 않기 때문에 색채원근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구조물과 배경을 구분 짓는 선적인 표현은 색상간의 경계를 형성하고 그렇게 형성된 구조물과 바닥의 유기적인 관계 역시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구성에 있어 산 혹은 거대한 자연물을 형상화 한 풍경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원석섬〉과 〈고전적 풍경〉시리즈에서 조금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주변과 대조적으로 화면의 특정 부분에 많은 색과 표현을 집약시켜 긴장감을 높인다는 점은 〈기념비적인 산〉과 동일하다. 그러나 곳곳에서 이것들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작가와 물감의 동세를 쫓아가다 보면 시선은 이미 경계가 아닌 다른 영역에 도달하게 된다. 화면을 바라보았을 때 풍경이라는 주제 아래 명쾌하게 구분되는 요소보다는 작가의 특정한 인상이 모인 곳에 다다르게 된다. 조형적인 면에 있어서도 굳건히 완성된 느낌의 풍경이 아닌, 풍경을 흩뜨린 후 재구성 하는 과정에서 작가에게 남아있는 인상의 에센스들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훈의 화면에선 대체적으로 강렬하게 남아있는 표현이 작가가 가진 한 풍경의 주제부이며 비교적 긴장감이 완화된 것이 배경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풍경이 주제부와 배경의 합산인 것 만은 아니다. 주제부가 아닌 배경의 한 지점에서 특별한 감상을 발견할 수도 있고 한 공간 전체에 흐르고 있던 분위기가 풍경의 인상을 좌우할 수도 있다. 작가는 풍경을 흩뜨리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앞서 말한 감상의 에센스만을 모아 새로운 구조물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구상과 추상 사이의 적절한 형태를 찾고 표현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감상자의 지적인 관심에 의지하는 미술이 아니라 매체이자 매개로서의 회화가 가질 수 있는 가시성과 전달력에 몰두하는 것이다. 또한 풍경이 지닌 라이트모티프이자 가장 큰 동세의 에센스를 찾아나가는 붓질 자체이기도 하다.
이주희